은행나무
19세기
야외나 관청에서 식사하는 이를 위해 음식을 나르는 상이다. 앞을 보기 위한 능형의 창이 앞뒤로 있으며, 양 측면에 장방 형의 손잡이 구멍이 있다.
백동
19세기
상류층의 여성들이 가마를 타고 이동할 때 내부에서 사용하던 손화로로서 굽이 있는 참외형태이며, 양쪽에 코끼리가 죽절형 손잡이를 물고 있다.
비단에 수묵채
20세기
<초상화>는 오사모(烏紗帽)에 녹색 단령(團領)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고 가볍게 공수를 하고 있는 반신상으로, 이러한 정면관은 취각(取角)이라 일컫는다.
무쇠
19세기
드므란 ‘넓적하게 생긴 큰 독’이라는 뜻으로 궁궐의 정전, 사찰의 대웅전과 같이 중요한 건물 네 모 서리에 물을 담아 배치하는 거대한 무쇠 기물이다.
은행나무
19세기
의원이 왕진을 갈 때, 간단한 몇 가지의 약재와 침구를 넣고 다니는 소형의 약함이다. 위쪽에는 손잡이를 달았고, 한쪽 측면에는 경첩을, 다른 쪽 측면에는 잠금장치를 달았다.
5세기
이 토기는 입이 크고 어깨에는 구멍이 난 둥근 귀를 부착했으며, 전체적으로 동그란 몸체를 가진 회청색의 항아리이다. 둥근 바닥을 가지고 있으므로, 높은 그릇받침에 올려 사용하고, 어깨 양쪽의 귀에 끈과 같은 것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.
대나무, 소나무
19세기
인장이란 곧 문서에 찍어 문서의 내용이나 문서를 작성한 이를 증명하게 하는 신물(信物)이다. 그러므로 인장은 곧 인장을 사용하는 주인의 품격을 나타낸다고 여겨졌다.
오동나무
19세기
찬합은 반찬을 여러 그릇에 나누어 담아 포개서 간수하거나 운반할 수 있게 한 용기로, 요즘의 도시락통과 같은 역할을 한다. 『임원경제지』의 기록이나 1868년(고종 5년)에 저술된 『진찬의궤』에 ‘왜찬합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본래 일본에서 들어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.
18세기
상단의 서랍 두줄과 한 층의 장으로 구성된 단층장이다. 장의 천판의 양 끝은 살짝 들어올려져 경쾌한데, 이는 두루마리를 펼쳐 볼 때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.
백자
고려시대
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는 백자광구병이다. 입은 반구형으로 뚜렷하게 각이 지도록 직립했는데, 올라온 끝 부분이 도톰하다. 술과 같은 것을 담을 때 밖으로 흘러 내리지 않으려는 듯 넓은 구연부는 꼭 작은 깔때기를 댄 듯하다.